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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livlovlun119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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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1493-1546) 인쇄술 교회의 분열 / 1517 비텐베르크 / 종교개혁 95개 반박문 / 마인츠의 알브레히트 주교 / 에라스무스 토마스 모어 / 1493 광부의 아들 / 한스 루더(광산업자 문학석사 아버지) / 아이제나흐 외가 / 에르푸르트 대학 법학도 /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 율리오 2세 현 교황 알렉산데르6세 보르지아 전임 교황 / 요한 폰 슈타우피츠(멘토 직속상사 교회 정치가) / 성 베드로 성당 건축 비용 면죄부 / 교황 레오 10세 알브래히트(마그데부르크 대주교 ; 마인츠 대주교=신성로마제국의 왕자 ; 호엔촐레른 가 일원 ; 형 요아힘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야코프 / 요한 테첼 구원 세일즈맨 / 인쇄술 루터 종교개혁 / 1517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논제 망치질 독일어로 민중에게 종교개혁 촉발 / 인쇄업자들이 판매가능성 캐치 대량 인쇄 판매 / 테첼과의 설전도 다 인쇄물로 출판 / 카예탄 추기경 / 신학자 요한 에크 루터의 동료 안드래아스 카를슈타트 / 루터 3년간 적어도 50만부 출간 / 1520 인쇄술 발명이후 가장 많은 작품을 출간한 생존작가 / 멜시에르 로터 라이프치히 인쇄업자 /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 프리드리히 선제후의 궁정화가 인쇄업도 겸업 / 삽화 추가 / 보름스 회의 / 카를 5세 / 수호천사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유일한 루터 편 / 안드레아스 칼슈타트 2위 스위스 개혁가 울리히 츠빙글리 3위 출판물량 / 추후 완고함으로 개혁을 통합할 인물은 아니었음이 드러남 / 토머스 뮌처(영적 종말론적) 요하네스 타울러(신비주의) / 뮌처 하인리히 파이퍼 농민 반란 촉발 / 금융 신용 인쇄술이 종교개혁 촉발 /
슐레이만(1520-1566 재위 10대 술탄) 대제와 오스만 제국 / 1526 8월 31일 헝가리 왕국의 모하치 / 예니체리(전문적 노예 병사) / 데브시르메 시스템(예니체리) / 오스만 -1324 오르한 1324-1362 / 바예지드 1세 메흐메트 2세 바예지드 2세 셀림 / 슐레이만(메흐메트의 증손자) / 베오그라드와 로도스 / 헝가리 모하치 / 비엔나 / 페르디난트 자폴리아 / 이브라힘 파샤 / 오스만 방식 / 하이레딘 바르바로사(북아프리카 해적) / 티마르 시스템(토지) / 슐레이만 이후 쇠퇴 / 술탄 경쟁 사라짐 관료주의의 한계 영토확장 마무리 등으로 서서히 국력 쇠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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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apesblog ·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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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의 생애 | 가장 강력한 기독교 지도자 | 종교개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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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maker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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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민주당 문 언제나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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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historysupply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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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당할 뻔했던 루터의 종교개혁 과연 그 진실은? (1분 ver) #sh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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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saram486-blog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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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데루마인 #빛사람 #모든병치유 #마중빛 #살아있니,진짜? #진짜그리스도 #성령의나팔소리 #하늘빛 #땅빛 #사람빛 #깨어나세요빛사람! #영생 #빛치유 #심판의때 #불의심판 #빛혁명 #전세계리셋혁명 #종교개혁 #가짜신을분별해라 #가짜신을버려라 #가짜믿음을버려라 #네 안에 가짜를 버려라 #가짜세상을버려라 https://www.instagram.com/p/B7-vMHWhx-p/?igshid=1r21l3s5qkub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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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xboy76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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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세계사 #koohakseo #청아출판사 #studiahumanitatis #renessainance #신항로 #종교개혁 #predestination #절대왕정 #rousseau #독립전쟁 #프랑스대혁명 #나폴레옹 #lamarseillaise #garibaldi #bismark #산업화 #1848년 #진화론 #세계대전 #de’tente #세줄평 19/8/21-9/20 세계사 2는 근대부터 2차대전 이후의 서양사가 그 대상이며 르네상스,절대왕정,#시민혁명 ,복고체제 ,산업화,제국주의, 세계대전 등을 시간 순으로 다루고 있다 世界史2は、近代から2次世界大戦後の西洋史がその対象であり、#ルネッサンス 、絶対王政、市民革命、復古体制、産業化、#帝国主義 、世界大戦などを時間順に扱っている 19세기의 이성주의와 반이성주의의 대립을 따로 떼어 인간은 합리 추구의 존재인가 불합리를 따르는 존재인가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19世紀の理性主義と反理性主義をわざと扱い、人間は合理を追求する存在か不合理に従う存在かを深く扱っている 세계 대전의 폭력 사회를 미국의 폭력으로 제압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평화와 전쟁은 결코 먼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교훈이다 世界大戦の暴力社会をアメリカの暴力で制圧し、平和を維持することができたのは、平和と戦争は決して遠いものではないのを示す教訓だ (Nagoya-shi, Aichi, Japan) https://www.instagram.com/p/B2psO4pgcKx/?igshid=1mbd9racn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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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yup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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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itocracy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 나름 화제다. 그런데 가만보면, 의외로 오히려 어린 친구들이 능력/성과주의를 옹호하는 축이다. 공부와 시험이 구분되지 않는, 그래서 공교육도 결국 대입을 위한 관문일 뿐이고, 대학 입학 후에도 취직을 위해선 학점/스펙 관리를 위해 수량화된 점수를 따야만 하는 나라에선 그게 어쩌면 당연한 인식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사법시험 출신인 나도 어떤 면에서는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사법시험이라는 시스템은 그래도 결국 스스로 시험에 붙고선 연수원을 수료해야만 자격이 주어지는 시스템이었고, 더구나 그 시험들 이라는게 단순히 경쟁률이 얼마나 높은지의 문제가 아니라, 압도적인 공부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도하게 어려웠던 시험이었기 때문에, 최소한 그런 시스템하에선 아부지가 뭐하는 사람이건, 집에 얼마나 많은 돈을 쌓아놓고 살아가든 상관없이, 다같이 죽고 살기로 덤비는 경쟁자들을 스스로의 힘을 제끼지 않으면 결코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면에선 살벌하게 공정하긴 했으니까
하지만 인간을 숫자로 치환하는 건 불가능하고,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서 인간과 세상을 왜곡함으로써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해로운 일이다. 능력/성과주의는 불가능한 전제를 기반으로 하는 거짓된 기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평가하고/평가받는 이유는 경쟁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고, 생존을 위한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불가피한 방법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 일테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 -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기하급수적으로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 - 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더 늦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그래서 대안이 뭐냐고? 그걸 같이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름 자기 딴에는 비판이랍시고, 이런 유치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가지만 짧게 덧붙이자면, 지금의 개인주의-자유주의-자본주의-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현대의 지배적인 사회시스템은 1400년대 종교개혁 시점부터 시작해서 500년이 지난, 1900년대에 후반부에가서야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안정화가 된 지 겨우 30여년 남짓 밖에 안 되었다. 물론 세상의 변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는 있다지만, 능력/성과주의에 대한 올바른 대안은 어쩌면 우리 세대는 알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생성된 모든 것은 스러진다는 점에서 우리가 대안없는 정답이라고 알고 있는 이 시스템 역시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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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shikkimus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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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개혁을 성공하게 한다 우리는 늘 개혁을 이야기한다. 정치가도 개혁을 이야기하고 기업인도 개혁을 이야기한다. 대학도, 교회도 개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현장에서는 개혁이 이루어지지를 않는다. 왜 그럴까? 왜 모두 개혁을 이야기하면서도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할까? 개혁이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이루어나가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학에서 개혁의 성공이 어려운 정도를 비유로 표현하기를, "개혁의 성공은 마치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를 갈아 끼우는 것만큼 어렵다"고 표현한다. 그 표현대로라면 개혁을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모두들 개혁, 개혁 하면서도 어디에서도 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세월이 간다. 특별히 금년은 종교개혁 503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진영에서는 기념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기념행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개혁이 다시 한 번 일어나는 변화가 필요하다. 느헤미야의 개혁이다. 느헤미야 개혁이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기도이다. 그는 개혁운동을 시작하기 전 먼저 금식하며 기도로 준비하였고 기도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기도로 마무리하였다. 그는 개혁이 중단될 위기를 당할 적마다 기도하였다. 금식하며 기도하고 홀로 기도하고 합심하여 기도하였다. 그래서 느헤미야서는 개혁 성공의 교과서이면서, 기도 성공의 교과서이기도 하다. 종교개혁 503주년을 맞으며 기념행사를 준비하기 전 먼저 무릎 꿇는 기도에서부터 시작하자. 20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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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lovlun119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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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43년 클라우디우스 황제 루드게이트 힐 콘힐 두 도시 건설 론디니움 즉 런던
알프레드 왕 웨식스와 머시아 왕국 통합 바이킹으로부터 런던 탈환 886년 그의 아들 에드워드와 딸 애설플래드는 바이킹들의 수도였던 요크를 넘어 노섬브리아 왕국까지 넘보았고 웨일스로도 진출
평화왕 에드가(재위 959~975) 오늘날까지 쓰이는 주로 나누는 행정체계 수립
노르망디 대공 정복자 윌리엄이 영국해협을 건너와 남쪽 해안에 상륙 1066 헤이스팅스 전투 런던탑 건설 노르만과 잉글랜드 사이의 중계도시로서 런던의 위치 정립 스칸디나비아와 인연을 끊고 서유럽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됨
윌리엄 사후 1154~1485까지 프랑스 출신 플랜태저넛 가문이 잉글랜드 지배 / 1215년 왕권제한 마그나카르타 근대 법체계를 마련하는 토대 / 1485년 튜더 가문으로 대체 / 헨리8세(1509~1547) 연합법 웨일스와의 통합 종교개혁 영국 국교회 창설 캐서란과 이혼 앤불린과 결혼 /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1603)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처형 프랜시스 드레이크와 월터 롤리가 주도한 발견과 해적의 시대 스페인 함대 격파 그리고 셰익스피어로 기억된다 / 제임스 1세(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 / 찰스 1세의 참수 내전(1642~1651) 크롬웰의 군사독재 왕정복귀 / 마침내 1707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스코틀랜드와 통합 / 1698년 스코틀랜드의 파나마 식민지 건설 실패 및 파산 재정 악화
넬슨제독의 빅토리호 쿡선장의 엔데버호 참나무배 / 1801년 연합법에 아일랜드까지 포함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완성
대영 제국 종말의 서막 독일과 미국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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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apesblog ·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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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의 생애 | 세계를 뒤흔든 종교개혁자 | 종교개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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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lin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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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이 이번 총회에서 이단사이비대책위의 보고서를 받고 마술을 금지했다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한국 교회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내려왔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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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petit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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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
오늘 애들을 재우러 누웠을 때 적당한 얘깃거리가 뭐 없을까 고민하던 중 올해가 종교개혁 500 주년이라는 사실이 문득 떠올라 마르틴 루터의 생애와 종교개혁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려주던 도중 나도 궁금해지는 것이 생겼는데, 가톨릭교회에서는 현재 연옥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500 년 전과 교리가 달라졌다면 얼마나 다른지, 연옥에 머무는 기간을 혹시라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 여전히 있는 것인지, 구원의 전제 조건에서 믿음과 선행 사이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내가 알기로 개신교에서는 더 이상 연옥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가톨릭은 이 개념을 버렸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요즘 돈을 받고 벌을 경감시켜 주는 것 같지도 않던데 무슨 대안이라도 있는 걸까. 사실 그 동네 사정은 전혀 모른다고 봐도 좋으니, 주위의 가톨릭교인에게 물어봐야겠다. 근데 주위에 가톨릭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누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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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ovich2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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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1
K가 종교 서적을 읽고 있어서 종교 얘기를 잠깐 나누었다. 나는 몇 해전 출근 준비를 하면서 읽었던 성경 책 얘기를 했다. 그리고 이사하면서 버렸다는 이야기까지. 그래서 킹 제임스판으로 하나 사서 읽을까 ���각 중이라고 했다. K는 NIV를 추천해 줬다.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종교개혁 얘기가 나왔고 나는 에라스무스를 얘기했다. 요즘 뭐를 읽으냐고 묻기에 얼마 전에 읽었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를 얘기했다. 나는 FMD 얘기를 하며, 이해는 하지만 인간이 무너졌을 때 기댈 곳이 종교밖에 없다는 게 좀 그렇다는 얘기도 했다. 사실 나는 이런 얘기를 하긴 했지만, 말을 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봐도,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도대체 무엇을 알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사람이란게 이렇게 어둠에 휩싸인채,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이리저리 팔을 휘저으며 뒷걸음 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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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tsaram486-blog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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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데루마인 #빛사람 #모든병치유 #마중빛 #살아있니,진짜? #진짜그리스도 #성령의나팔소리 #하늘빛 #땅빛 #사람빛 #깨어나세요빛사람! #영생 #빛치유 #심판의때 #불의심판 #빛혁명 #전세계리셋혁명 #종교개혁 https://www.instagram.com/p/B7-K9ijBg4a/?igshid=1fdj9f0epgb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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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할 수 있다.30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그의 말씀에 대한 고백이 분리될 수 없고 오 히려 함께 간다.
확인할 수 있다.30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그의 말씀에 대한 고백이 분리될 수 없고 오 히려 함께 간다. 나아가 종교개혁 전에는 확장된 성경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는 점도 염 두에 두어야 한다. 성경교리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발전하고 정리되고 있 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신조에서 신학적 체계를 위해 서론 격인 성경론을 앞세우는 것은 종교개혁 초기에 아직 흔치 않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성경 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권위를 가졌기 때문이다. 성경론을 가장 앞에서 자세히 진술해야할 필요성이 없었거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교회의 유일한 표준으로서 등장하곤 하는 것 을 보게 된다. 아직 성경의 권위의 근거로서 자체가신성이나 자기해석권을 진술하지는 않으나 성경이 표준이 된다는 것은 종교개혁은 처음부터 인식 했고 고백서에 등장한다. 1528 베른논제(Theses Bernenses 1528)는 교회를 제1조항에 다루는데,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말 씀에서 태어나서 그 말씀 안에 머무르며 다른 것을 들을 수 없다고 한다.31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없이 어떤 법이나 계명을 만들 수 없 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정해지고 명령된 것만큼 매여 있음을 말한다.32 이것은 왜 로마교회를 벗어나서 행동하는지에 대한 근거 로서 종교개혁 초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칼빈 이전의 제네바 종교개혁자로 알려진 파렐의 1529년의 『개요』(summaire) 15항에서 성경에 대해서 말 할 때 성경에 포함된 것 외에 어떤 교리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말 한다.33 이렇게 종교개혁 초기의 개혁교회의 신조에서 성경은 교회를 제한 하는 표준으로 등장한다. 나아가 이미 초기에 성경해석 문제에 관심을 가졌음을 확인하게 된다. 1536년 스위스 제1신조는 1항에서 성경을 말하는데, 성령님으로부터 온 성경이 모든 경건과 생활의 모든 규칙을 홀로 완전하게 포함한다고 말한 다. 2항은 성경의 자기 해석을 말한다. “이것[성경]의 해석은 오직 그 자체 로부터 이끌어져서 사랑과 믿음의 원칙 아래서 그 자신이 자신의 해석자가 된다”34 이렇게 해서 스위스 제일신조는 16세기 신조로는 특이하게 성경론 을 가장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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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ego cogito ergo sum)로 말해지는 의심의 방법론은 이성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ego cogito ergo sum)로 말해지는 의심의 방법론은 이성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푸치우스(Gisbertus Voetius, 1589-1676)는 데카르트의 사상이 가진 위58 “Sed omnino discors est pugnans Traditionis notio quae universali Ecclesiae Magisterio opponitur, quod quidem pertinet ad Romanum Episcopum Episcoporumque coetum.” DH 4822.● 신학정론험성을 발견했고 그의 사상과 싸웠다. 데카르트의 이성주의가 현대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푸치우스는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사상과 싸운 개혁신학자였다. 푸치우스를 통해서 이성주의에 맞서 성경의 권위가 어떻게 변증되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여기서 이성주의와 다툰 푸치우스의 논쟁을 역사적으로나 종합적으로 다 다룰 순 없고 다만 그의 전집에 나타난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푸치우스의 주저로 언급되는 『신학논쟁선집』(Seletae disputationes theologicae)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이 ‘믿음의 문제에서 인간이성에 대하여’(de ratione humana in rebus fidei)이다.59푸치우스에게 믿음의 근원은 이중적인데 하나는 외적이며 하나는 내적이다.60 외적인 근원을 다시 객관적 근원이라고 부르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적인 것은 성령의 조명으로 우리 마음에 비추인 초자연적 빛이다. “이 믿음의 외적근원은 가장 먼저이고 자체가신적이어야만 하는데, 모든 다른 사실들과 조항들과 결론들이 먼저 여기에서부터 나오고 최종적으로 여기로 귀결된다.”61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의 외적 근원이며 이것이 근본적이며 객관적 근원이서, 모든 사항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결된다.우리 시대에 그 의미를 다시 확인하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는 종교개혁 전체를 규정지을 수 있는 말이 될 것이다. 종교개혁은 말씀으로 떠났던 교회를 향하여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운동이기 때문이다. 루터가 성경을 강의하면서 구원론을 발견했을지라도 처음부터 ‘오직 성경으로’가 종교개혁의 핵심적 지침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로마교회도 당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교황과 교회의 권위로 루터를 위협하면서, 루터는 성경과 교회의 관계와 성경「신학정론」 제 35권 2호 ● 신학정론의 권위의 문제를 의식하게 되었다. 이후 종교개혁은 성경을 잣대로 삼는 운동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했다. 이후 교회와 성경의 권위의 관계 논의에서 성경의 권위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권위 아래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다시 로마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직 성경’이라고 할 때에, 결국 그 핵심은 자체가신성(αὐτόπιστος)이 될 것이다. 로마교회는 성경이 교회의 도움을 받아 권위와 가신성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했으나,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권위는 교회의 도움 없이 스스로 가신성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종교개혁가들은 어떤 맥락에서 성경의 권위를 자체가신성과 함께 생각했는가? 본 강연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성경의 자체가신성이 어떤 맥락가운데서 등장했는지 살필 것인데, 루터와 칼빈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 다음 개혁교회에서 성경의 자체가신성이 어떻게 자리잡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할 것이다. 다음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 자체가신성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이 때 로마교회와 이성주의의 도전을 간략하게 살필 것이다. 1. 루터루터가 1517년 95개 조항으로 면죄부를 반대했을 때, 얼마 안 있어 바로 성경의 권위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로마가톨릭의 심사관이었던 프리에리아스(Prierias)는 로마교회로부터 특별임무를 받아 1518년 봄부터 루터에 대한 소송을 이끌어간 인물이다. 바로 이 인물은 여기서 교회와 공의회와 교황이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기본적 기초를 세우고 루터를 공격하는 논리를 세운다. 루터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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