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엄마랑 쇼부를 봤어요. 고등학생 때 처음 베이킹을 하겠다고 학원을 한 달 다녀봤는데, 혼자 할 수 있겠더라고요. 엄마한테 학원비 대신 그만큼의 재료를 지원해달라고 했어요. 이것저것 시도 해보려면 한번 냉장고 채울 때마다 30만원 씩은 들었거든요. 근데 막상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서 혼자 베이킹을 하려니 쉽진 않더라고요. 15년 전만 해도 유튜브 영상도 별로 없고, 왜 그렇게 실패하는지 모를 때도 많았어요. 책에도 안 나와있고… 그럴 때마다 큰 위로가 된 건 엄마의 응원이었어요. 저희 엄마가 19살 때부터 미용실 원장이셨대요. 평생을 기술을 가지고 사셔서 그런지 ‘실패를 많이 해봐라, 기술자는 그럴 때 느는 거다’라고 항상 얘기하셨어요. 실패를 반복해도 내 길로 잘 가고 있다는 응원 같더라고요. 고등학생이었던 제가 지치지 않고 똑같은 빵을 반죽부터 수십번씩 시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죠.”
- HOS 미니시리즈: 달콤한 이야기 -
“When I was a kid, my mom and I struck a deal. In high school, I decided I wanted to learn how to bake, so I went to a baking school for a month. But I felt like I could learn on my own. So, instead of paying for my baking school tuition, I asked my mom to buy me ingredients. Filling up the fridge to try out various new things would cost about 300,000 won each time. It wasn’t easy learning to bake on my own. Even just 15 years ago there weren’t many videos on YouTube, and a lot of the time, I didn’t even understand why the stuff I made wasn’t turning out right. I couldn’t find the answer in books either. But whenever that happened, it was always my mom’s encouragement that made me feel better. My mom has run her own hair salon since she was 19. So, maybe it was because she had made a living from her craft her entire life that she always said to me, ‘Don’t be afraid to fail. That’s how craftspeople hone their skills.’ Thanks to her encouragement, I always felt like I was on the right path despite the repeated failures. It was the motivation I needed back in high school to keep trying to make the same bread from start to finish dozens of times without getting sick of it.”
본가로 돌아오기 전,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다. 그쯤의 나는 이제 막 말투에서 촌년 티를 벗어 낸 후였고 특별히 단짝이라고 할 만한 친구 없이 지내다 생애 처음으로 소중하다고 할만한 무리가 생길랑 말랑하고 있었더랬다. 이모는 항상 특기 적성으로 성적에 필요한 수업만을 허락해 주었는데 그때는 무슨 바람이셨는지 내가 줄곧 배우고 싶다던 종이접기를 선뜻 신청해 주셨다.
꿈에 그리던 종이접기 수업에서 나는 다양한 학년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러다 한 언니와 몇 번 같이 앉으며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었다.
나는 그 언니가 좋았다. 어디서든 첫째이자 맞이인 나에게 두 살 터울의 그녀는 귀한 인연이었고 매사 우물쭈물하고 소심한 나에 비해 언제나 털털한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제일 좋아하는 수업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사람과 함께 배우는 이야기는 그 당시의 나를 여러모로 들뜨게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언니는 나와 함께 앉지 않았다. 내가 인사를 하면, 그냥 한 번 쓱 쳐다보고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가기 일쑤였다.
나는 당황했지만 그저 사정이 있으려니. 애써 올라오는 불안을 잠재우며 외면했다.
사실 어떤 일이 나려면 언니와의 사이어야 했다. 그런데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적성 수업을 마치고 귀가를 하려던 참이었다. 가방을 챙기고 문을 나서려는데, 누군가 내 옆을 지나며 욕을 하는 것이었다. 순간 깜짝 놀라 토끼 눈으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는데 처음 본 여자애가 본인의 친구와 함께 나를 보며 키득거리는 것이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일에 나는 너무 놀랐고 그렇게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얼마 뒤 알게 된 것은, 나에게 욕을 한 아이가 나와 같은 특기 적성을 듣는 동갑내기고 언니가 나를 무시할 무렵부터 함께 다니는 사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나에게 욕을 한 이유에는 언니의 터무니없는 이간질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 이 일이 있기 전 나는 그 아이가 같은 수업을 듣는지도 심지어 같은 나이인지조차 몰랐다.
그러니 이간질이라는 말 자체도 본래라면 성립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난 그 아이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한 적이 없으니까.
이 소식을 접한 뒤 처음 들었던 생각은 그저 억울함이었다.
그제껏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싫어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다른 이의 미움을 사야 한다니.
그러나 누가 봐도 내 잘못이 아닌 이 일을 나는 바로 잡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나는 반 친구들과 인사할 틈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요즘도 가끔 관계에 대한 고민이 생길 때면 자연스레 이 일에 대해 떠올리곤 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문득 그때 내 행동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생각봐야겠다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그때 내가 진실을 말했다면 이후에 그 아이는 나에 대한 오해를 풀었을까? 그리고 언니와의 관계는 다시금 회복되었을까?글쎄. 그건 알 수 없는 일이고, 어쩌면 관계는 더 악화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내가 벌이지도 않은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내게 묻은 오해를 닦아내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비겁함 뒤에 숨어서. 내가 아닌 나의 행동을 그저 방치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어른으로 자랐다.
나는 여전히 비겁하다. 소심하다는 말 뒤에 숨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비치지 않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진 나에 대한 오해를 풀지 않는다. 어떠한 계기가 필요했던 걸까 생각해 봤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지나온 기회는 많았다. 그저 그때마다 용기 없는 나에게 스스로를 가둬두고 변하지 않았을 뿐.
그렇게 어느 면에선 무책임하리만치 스스로를 내버려둔 나를 책 속의 그녀는 일깨워 주었다. 너무나 유약하고 선하지만 이상하게도 단단하게. 그녀는 말미에 자신이 한 선택이 또 한 번 틀릴지라도 그 순간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말한다.어쩌면 나는,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내는 아주 작은 용기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내세울 수 있는 신념 정도는 가질 수 있다고, 그 연약한 단단함이 설사 지금보다 관계가 악화될지 언정 바로잡을 시도 정도는 해야 한다는.
나는 그녀에게서 그런 완고함을 배웠다.
잘 만든 이야기는 마음에 결이 인다.
책을 읽으며 그녀와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하다가 내가 그녀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난 화욜, 밤에 벤쿠버 도착해서 차에 시동을 거는데 시동이 안걸린다. 흠. 별로 춥지도 않았는데, 고작 5일 세워 둔 것 뿐인데 베터리가 나갔나? 싶어 급한대로 점프 했는데도 안된다. 일단 날이 늦었고 비행기 수리 받으러 행어 들어오는 시간이라 이 메카닉을 계속 잡아 둘 순 없느니 고맙다 하고 기차 타고 집에 갔다.
다음 날, 또 시도 해 봤으나 역시나 안된다. 전조등에 불이 들어오는 걸로 봐선 베터리 문젠 아닌 듯 하고. 어쨌든 수리받으려면 오토샵 가야하니 토잉 하기로 결정. 문제는 하필 이 날 벤쿠버가 영하 13도로 떨어지고 눈이 오는 날이라 토잉 필요한 차들이 엄청 많았다는 것. 로컬샵들 몇 군데 전화 해 봤는데 최소 5시간 대기. 어후. 근데 운이 좋게도 한 군데가 연락되어 내일 아침에 픽업하기로 약속.
어우. 플랫베드 트럭 와서 놀랐다. Jonny’s towing 이라는 업체인데 진짜 강추. 사장님 조니가 직접 와서 이런저런 조언들도 해 주고. 이 사람도 피앗 오너라 자기 튜닝한 거 사진들도 보여주고 이 참에 리치몬드 피앗 오너스 모임 있��데 니도 오라고, 같이 맛집도 가고 튜닝도 하고 그런다고 해서 급 친밀감 상승. 조니는 자기한테 전화하는 사람들은 다 토잉 필요한거고 대부분 안좋은 상황인데 그냥 돈만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자긴 조금이라도 그 사람들한테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 마인드가 참 좋다.
그 와중에 내가 사진 찍는다 하니 클스마스 데코 불도 다 켜주는 조니 사장님. ㅎㅎㅎ
크라이슬러는 비쌀 것 같아 안가고 추천받은 정비소로 갔다. 퓰 펌프 문제라 펌프를 갈아야 할 것 같은데 부품이 없어서 구하는 중이라고. 견적 나오는 거 봐야 알겠지만 아마 그냥 다른 차를 구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고. 사람들이 피앗 별명 모르냐며, Fix It Again, Tony ㅎㅎㅎㅎ 아 진짜 한참 웃었네.
나는 겁이 많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쉽게 믿어버려서
그래서 자꾸만 그 사람을 바로 뒤집어보고 싶다.
그게 신중한 건지,
쉬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야.
-Ram
*신중함
1.
살면서 올해 내 입에서 신중하라는 말을 최고로 많이 했다. 누군가에게 한 말이지만 사실 그건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 신중했니. 너 신중했니. 나 신중하고 있나. 너 신중하고 있나. 아마 수십 번을 더 물어봐도 대답은 항상 같겠지.
2.
내가 신중한 이유의 8할은 상처받기 싫은 것이다. 좋은 선택을 했냐, 안 했냐는 이미 선택을 했으니 의미 없는 문제고.
3.
늘 신중했던 사람도 뒤통수를 맞는다. 별로 신중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은 그저 행복하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하늘이 돕는 건지.
-Hee
*신중함
1.
잔뜩 쌓인 커다란 문제들을 떠올리면 내가 곧 없어질 것만 같다. 구태여 시간 들여 생각해 봐도 당장 어찌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괴로운 마음만 든다. 그러면서도 최악을 대비하는 못된 버릇은 없어지지 않았다. 태생부터 겁이 많았던 탓일까. 하지만 두려운 마음을 끝없이 껴앉고 살아가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종종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더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문제들로부터 나를 분리해 내야만 했었다.
그러고 나니 매일매일에 깊이감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해왔던 대로 하면 되는 하루. 단순하고 쉽게 흘러간다. 좋은 일이겠으나 어쩐지 아쉽다. 더 살고 싶었던 내가 우습게 느껴진다. 사소한 일상마저도 골똘히 생각하게되는 저녁이 괜히 절망스럽다. 둔감해지고 싶다. 무심하게 나를 버려둘 곳을 찾고 싶다.
2.
필터 커피를 다시 내려서 마시기 시작했다. 원두의 분쇄도 조절, 원두와 물의 양, 물을 나눠 붓는 차수와 타이밍, 드리퍼의 형태와 크기, 필터의 종류, 그라인더 버의 형태. 여러 변수를 조절해서 내 취향에 맞는 커피를 찾아가는 일. 욕심에 못 이겨 새로 산 도구들을 보면 유난이 따로 없다 싶은데도 재미가 있으니 괜찮다. 신중하게 마음을 쏟고, 그 결과가 확실하게 보답으로 다가온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진다.
-Ho
*신중함
꽤 신중한 편이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편이 실수하는 거 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라는 게 여기서 그만하겠다는 결심이 있을 뿐, 100퍼센트는 없다.
확신이 없는 확신을 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다.
최선을 다했으면 세상에 보내주고 맡기는 게 필요하다.
나는 한정적이지만 세상은 무한하니까.
그 무한함을 신뢰한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얼마큼 이 일에 최선을 다하느냐지, 어떤 것에 대한 결과를 내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함 아닐까?
몸을 써서 운동을 해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나약하니까 무능력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되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
신중히 결정 했다고 해서 안 하는 방향으로 선택하기보다는,
신중하되 결론은, 그래도 일단 해보자는 선택을 하고싶다.
나는 내 삶에서 가능성을 많이 만들고 싶고, 일단 시도 했다면, 어떤 것도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세상이 주는 모든 가능성에 YES라고 대답하고 싶다.
여전히 앞으로 내가 마주하고 해나갈 일들이 있다는 것이 설렌다.
그 일 뒤에 성장해 있을 나 자신이 기대된다.
나를 보호한다는 핑계뒤로 숨어서 나에게 오는 기회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신중히 결정한 것들이 언제나 "일단 해보자"라는 결론이 내어질 수 있도록,
나의 직관을 더 신뢰할 수 있도록, 나 자신과 더 많은 대화를 해야겠다.
한국에서 선관위와 법원은 역시 한통속이었다. 엄청난 국민적 공분을 산 중앙선관위 고위직 자녀 부정채용 의혹과 관련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직 선관위 고위 인사에 대해 법원이 사안의 중대성을 인정하면서도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귀에 걸면 귀걸이,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하나마나한 이유를 들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현재 중앙선관위 및 지방선관위 위원장들은 모두 현직 판사들이 겸직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원장은 현직 대법관이 겸직하고 있고 시도 및 시군구 선관위원장은 지방법원장이나 지방법원 판사가 겸직한다. 각급 선관위원장을 겸직하는 판사들은 선관위에서 선관위원장 수당 받고 진수성찬 대접이나 받으면서 선관위 공무원들이 갖고 오는 서류에 결재나 하는 왜곡된 구조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법원은 지난 4.15 총선 선거무효소송 재판 과정에서도 노골적으로 선관위를 비호해 거센 질타를 받은 바 있다. 그랬던 법원이 이번에 선관위 고위직 자녀 특혜채용 비리 사건 피의자인 선관위 전직 고위직 구속영장을 기각함으로써 선관위와 법원은 사실상의 한식구, 유착의 카르텔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김미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송봉섭 전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심사)을 한 뒤 3월 7일 밤 "공무원 채용 절차의 공정성과 관련된 중대한 사안이기는 하나 피의자를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미경 부장판사는 "관련 증거가 대부분 확보돼 있고,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과 친분 관계를 유지하며 연락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주거, 가족관계에 비추어 도망할 염려가 낮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직 충북선관위 관리과장 한모씨의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김 부장판사는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하고 있고 관련 증거가 대부분 확보돼 있다"며 "퇴직자로서 선관위 소속 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이에 앞서 선관위 부정채용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김종현 부장검사)는 4일 송봉섭 전 사무차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격소환 조사한 뒤 5일 송봉섭 전 사무차장과 전직 충북 선관위 한모 관리과장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공모해 2018년 1월 송봉섭 전 차장의 딸 송모씨를 충북 단양군 선관위 경력직 공무원으로 채용토록 한 혐의를 받는다.
인사 업무 담당자이던 한씨가 송 전 차장으로부터 직접 청탁을 받아 채용 절차가 진행되기도 전에 송씨를 합격자로 내정했고, 이후 형식적으로 채용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송 전 차장은 중앙선관위 고위직인 기획국장으로 근무 중이었다. 충남 보령시청에서 8급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송씨는 면접위원 3명으로부터 모두 만점을 받아 선관위 경력직으로 합격했다.
한씨의 경우 고등학교 동창의 딸인 이모씨의 충북 괴산군 선관위 경력직 공무원 부정 채용에도 같은 방식으로 관여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한씨는 이를 위해 이씨의 거주 지역을 경력채용 대상 지역으로 결정하고, 이씨를 합격자로 내정해 채용 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송 전 차장은 채용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선관위가 지난해 5월 특별감사를 진행하자 "특별감사 결과와 상관없이 현 사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함께 딸의 부정채용 의혹이 불거진 박찬진 전 선관위 사무총장과 함께 사퇴했다.
한편 2022년 광주광역시 남구 9급 지방공무원에서 전남 강진군 선관위 경력직으로 채용된 박찬진 전 사무총장 자녀는 6개월 반 만에 8급으로 승진해 '아빠 찬스' 논란이 일었다.
검찰은 권익위원회 수사 의뢰와 시민단체인 자유대한호국단 고발 내용을 검토해 같은 해 9월부터 1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중앙선관위와 지방선관위, 박찬진 송봉섭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며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송봉섭 전 사무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상급자인 박찬진 전 사무총장도 소환조사할 방침이었으나 법원에서 사안의 중대성을 인정하면서도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송 전 사무차장 영장이 기각되면서 박찬진 전 사무총장에 대한 수사에도 일정부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선관위 부정채용 의혹 고위직에 대한 김미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구속영장 기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저런 식의 논리라면 정말 속말로 엿장수 마음대로 아닌가.
과거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물론 사법부의 수장이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구속영장을 자동판매기처럼 발부하던 한국 사법부와, 스스로 범죄 혐의가 중대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걸핏하면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군색한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요즘 한국 사법부는 같은 사법부가 맞는가. 왜 상대에 따라 그렇게 구속영장 발부 기준이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달라지는가. 참으로 황당한 구속영장 기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