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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
agaapesblog · 3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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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 들어갔다 결국 차만 망가질뻔. 캠핑카 세계여행. 러시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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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ngrid-blo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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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 of Lake Baikal - Olkhon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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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 of Lake Baikal - Olkhon island by Simon Dubreuil Via Flickr: Siberia.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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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omansense-blo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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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맞닿아 선명한 지평선을 그리는 광활한 몽골 초원. 그리고 깊은 호수 속에 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여름 여행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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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hom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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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같은 호수를 품은 러시아의 검은 보석 "시베리아 바이칼호 #차가버섯 " 입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는 센스있는 선택! 상세 정보는 #건강한우리집비옴 홈페이지를 이용하세요.(The Healthy House에서) https://www.instagram.com/p/B0AxCPpl9CR/?igshid=s26kzbalga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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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해양 실크로드 문명 대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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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해양 실크로드 문명 대 탐사
[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해양 실크로드 문명 대 탐사
이정민 편집국장 | 제 호 | 2015.12.31 18:01 입력
VIP 독자 여러분,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정민입니다.
수 년전 실크로드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중국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내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출발해 투르판(吐魯番)-쿠처(龜玆)-파미르 고원을 거쳐 중국의 서쪽 끝 카스(喀什)로 이어지는 이레간의 육로여행이었습니다.버스에 몸을 싣고 하루 10시간 넘게 서쪽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던,꽤 고단한 여정이었지만 일행을 인솔했던 중앙아시아 전공 학예사 선생님의 친절한 ‘강의’ 덕분에 고대사와 인류학·문화교류사를 섭렵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황홀한 여행이었습니다.
수백년에서 수천년을 거슬러올라가는 시간여행-.한나라의 장건,당나라 고승 현장법사,그리고 신라의 혜초가 지나갔을 그 옛날 비단길을 되밟으면서 두근거리는 설렘과 전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소설 ‘서유기’의 무대로 삼장법사가 넘었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붉은 사암언덕 화염산,텐산대협곡,교하고성,조선족 화가 한낙연의 글씨가 벽면에 남아있는 키질 석굴,청 건륭제의 첩이었던 위구르족 출신 향비(香妃)가 묻혔다는 향비묘,이슬람 모스크와 바자르(시장)까지.시간이 쌓이고 공간이 덧칠되면서 이질적이고 이색적인 것들이 뒤섞여 빚어낸 묘한 조화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실크로드란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은 독일의 지질·지리학자이자 탐험가였던 리히트호펜(1833~1905)이라고 해요.이 사람이 중국 곳곳을 여행하면서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중국-중앙아시아-서북인도 일대에 걸쳐 형성됐던 무역로를 ‘실크 로드’라고 명명한 데서 비롯됐다는게 정설입니다.당시 주요 교역품이 중국 비단이었던 데서 착안한 이름이죠.
고대 중국인들에게 처음 ‘비단길’을 열어준 사람은 한나라 관리 장건입니다.북쪽 국경을 넘어 약탈을 일삼던 흉노 때문에 골치를 앓던 한 무제는 BC 139년, 흉노와 원수지간인 대월지(터키·이란계)와 동맹을 맺어 흉노를 칠 계략을 세우고 장건을 서역에 파견합니다.대월지는 흉노에게 땅을 빼앗겨 파미르 고원 서쪽,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일대로 쫒겨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월지를 만나러가는 원정길 자체가 큰 모험이었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장건은 도중에 흉노에게 붙잡혀 10년넘게 인질 생활을 합니다.결혼해 자식까지 낳고 살았으나 13년만에 탈출에 성공해 한나라로 돌아갑니다.장건은 무제에게 서역국에서 보고 들었던 정보와 문물을 소개하면서 그들과 교역할 것을 권합니다.장건의 서역출사가 시발이 돼 한나라가 서역국들과 교역을 시작하면서 역사적인 비단길이 열리게 된거죠.
실크로드는 교역로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종교가 소통하는 루트 역할도 했습니다.현장·법현·혜초 같은 고승들은 불교 경전을 수집하고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비단길을 따라 인도로 갔습니다.사람들은 서로 섞이고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입니다.그리스·로마의 문화와 인도의 불교 문화가 섞여 탄생된 간다라 미술이 비단길을 타고 전파된 것도 이런 이치지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출현한 것은 빙하기가 끝날 무렵인 3만여년 전이라고 합니다.인류학자들 중에선 호모 사피엔스가 오늘날의 인류로 진화돼 온 비결로 장거리 여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란 점을 꼽는 견해도 있습니다.일견 타당해보이는 학설 아닌가요.여행은 교류이고 소통입니다.소통은 모방을 낳고,모방이 또다른 창조로 이어지면서 인류는 진화해온 것 아닐까요.안주하지 않고 탐험하는 것,서로 포용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DNA가 인류를 진화시켜온 경쟁력의 원천이 아니겠습니까.
2016년 병신(丙申)년을 맞아 중앙SUNDAY는 ‘해양 실크로드 문명 대 탐사’ 기획을 준비했습니다.실크로드의 바닷길을 따라가면서 펼쳐졌던 해양 문명의 교류사를 되짚어보고 해양 실크로드의 현재적 의미를 탐구해보고자 합니다.’중국몽(中國夢)’을 들고나온 시진핑(習近平)주석의 국가발전·외교 전략의 핵심은 이다이이루(一帶一路) 구상입니다.이 구상은 주변국들의 협력과 환영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미국·일본과의 대립과 갈등을 빚고 있기도 합니다.국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는 이 기획을 관통하는 메인 테마이기도 합니다.
육상 실크로드가 장건에서 출발했다면 해양 실크로드는 명나라 환관이던 정화(鄭和)에서 시작됩니다.명 황제 영락제의 지시를 받은 정화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7차례에 걸쳐 남중국해와 인도양·아프리카 연안까지 30여개국의 원정에 성공함으로써 중국은 대륙과 바다를 동시에 호령하는 강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우리의 여정은 정화 원정대의 출발점인 푸젠(福建)성에서 시작합니다.한국해양수산개발원과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주강현 원장이 중앙SUNDAY 취재진과 함께 시리즈를 이끌어갈 것입니다.
지난주 중앙SUNDAY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여권내부 물밑에서 나오고 있는 파열음의 한 자락을 취재했습니다.아직 겉으로 드러나진 않습니다만 새누리당내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간 신경전이 수위를 넘고 있는 듯합니다.총선 주도권을 청와대가 쥐느냐,당이 쥐느냐에 따라 총선후 정국은 물론 2017년 대선 후보 결정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기 싸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여기에 야권 분열이란 변수가 겹치면서 여당 분당론까지 거론되는 형국입니다.야권이 쪼개진만큼 여야 4당 대결구도가 된다고 가정하면 유불리의 셈법이 달라질수도 있다는 얘기죠.나름 성공적인 지지율 관리로 정국 운영의 그립을 강하게 쥐고 있는 박 대통령을 따르는 무리들이 친박 신당을 만들면 TK,PK에서의 강력한 지지로 제1당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호사가들 사이에 공공연히 나오고 있습니다.이렇게 되면 김무성 대표 주도의 새누리당식 공천체제에서 공천이 불안한 사람들도 대거 ‘구제’될 수 있으니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식이죠.무슨 무협지 같은 얘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자를 남자로 둔갑시키는 것 빼고는 다 가능한게 정치라고 보면 허무맹랑한 공상소설만은 아닌 듯도 ��군요. ‘안철수 신당’의 나비 효과가 ‘친박 신당’으로 이어질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관련기사]여권에서 솔솔 피어나는 ‘친박 신당론’ 친박 핵심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같이 못가…야권 분열이 여당 분열 불씨”
P.S. 마지막으로 한가지.’제작담당’이란 직함을 둘러싸고 적잖은 독자들로부터 ‘헷갈린다’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혼선을 피하기 위해 ‘편집국장’이란 직함으로 통일해 쓰기로 했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혼란을 빚어 죄송합니다.
[참고자료]
실크로드
[ Silk Road음성듣기 ]
         목차
실크로드란 인류문명의 교류가 진행된 통로를 말한다. 실크로드란 말은 130여년 전인 근세에 와서 출현했는데, 이 명칭을 처음 쓴 사람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 1833~1905)이다. 그는 1869~1872년에 중국 각지를 답사하고, 1877년부터 1912년까지 『중국』(China)이란 책 5권을 찬술하였다.
그는 이 책 제1권의 후반부에 동서교류사를 개괄하면서, 중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시르다리야(Syr Darya, 시르강)와 아무다리야(Amu Darya, 아무강) 두 강 사이에 있는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 지역과 서북인도로 수출되는 주요 물품이 비단(silk)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이 교역로를 독일어로 ‘자이덴슈트라센’(Seiden strassen: Seiden=비단, strassen=길, 영어로 Silk Road)이라고 명명하였다.
그후 스웨덴의 허턴(S. Hutton, 1863~1952)과 영국의 스타인(A. Stein, 1862~1943) 등에 의해 중앙아시아 각지뿐 아니라 지중해 동안에 위치한 시리아에서도 중국의 견직 유물이 다량 발굴되었다. 이를 근거로 독일의 동양학자 알베르트 헤르만(Albert Herrmann)은 1910년에 이 실크로드를 시리아까지로 연장하였다. 이 실크로드는 주로 중앙아시아 일원에 점재(點在)한 여러 오아시스(oasis)를 연결하여 이루어진 길이므로 일명 ‘오아시스로’라고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동양학자들은 오아시스로를 통한 동서교류 연구를 심화하여, 중국에서부터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지나 터키의 이스탄불과 로마까지 연결하여 장장 1만 2천km(직선거리 9,000km)에 달하는 이 길을 동서간의 문화통로와 교역로로 규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실크로드의 범위를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 초원지대를 지나는 초원로(草原路, Steppe Road, 스텝로)와, 지중해로부터 홍해(紅海) · 아라비아 해 · 인도양을 지나 중국 남해에 이르는 남해로(南海路, Southern Sea Road)까지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 실크로드의 3대 통로(간선) 중 남해로의 명명 유래는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점이 있는바 수정되어야 한다. 원래 ‘남해로’란 이름은 이 루트가 남방에 위치해 있고, 또 그 길이 중국의 남해에까지 이르는 바닷길이라는 이유에서 그렇게 명명되었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이른바 ‘남해로’라 불리는 이 해로가 중국의 남해를 넘어서 태평양 건너 미주(美洲)에까지 연장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종래의 ‘남해로’란 명칭은 적절치 못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환지구적으로 연결된 이 바닷길은 범칭적(汎稱的)인 의미에서 ‘해로(海路)’로 개칭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실크로드 3개 간선의 정확한 명칭은 ‘초원로’와 ‘오아시스로’ ‘해로’가 된다.
실크로드란 원래 중국 비단의 유럽 수출로에서 연유된 조어(造語)였으나, 그 개념이 확대된 결과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하나의 상징적인 아칭(雅稱)으로 변하였다. 사실상 초원로나 해로는 물론이거니와, 오아시스로도 그 길을 따라 비단이 교류품의 주종으로 오고간 것은 역사상 짧은 기간이었을 뿐, 여러가지 교역품이나 문물이 오랫동안 교류되었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실크로드는 비단의 일방적인 대서방 수출로 인해 이름이 지어졌고, 또 비단이 로마제국(특히 말엽)에서 큰 인기를 모은 진귀품으로서, 그 진가를 기리기 위해서 그 명칭이 고수되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명칭은 분명히 유럽 중심주의 문명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며 진정한 문명교류 차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란 이름이 시종 존속되어온 것은 바로 그 상징성 때문이다.
실크로드는 문명교류의 통로인 것만큼이나 노선과 교류 여하에 따르는 유한(有限)된 하나의 역사적 개념으로서, 분명히 그 시말(始末)이 있다. 그 시말은 광의적(廣義的) 시말과 협의적(狹義的) 시말로 갈라볼 수 있다. 광의적 시말은 실크로드가 선사시대에 개통되어 지금도 계속 기능하고 있다는 좀더 넓은 의미에서의 시말이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에 홍적세(洪積世)가 시작되면서 일어�� 인류의 대이동에 의해 유라시아 대륙에 몇 갈래의 길이 생겼는데, 이것이 실크로드의 시작이다.
지금도 비록 교통수단이나 노선은 달라졌어도 여전히 이 길은 문명의 교통로로서 기능하고 있다. 기원전 7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발생한 농경과 목축업 및 토기와 방적기술 등 원시문명이 이 길을 따라 각지에 전파되었으며, 서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각각 기원전 6000년경과 4000년경에 발생한 채도(彩陶)도 이 길을 따라 동서로 광범위하게 전파되었다.
선사시대에 동서교류를 시사하는 최초의 유물로는 지금으로부터 만여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너스상이 있다. 지금까지 서로는 유럽의 피레네 산맥 북방으로부터 동으로는 바이칼호 부근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의 20여 곳에서 수백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시기의 문명이동은 일방적이고 단향적(單向的)인 이동으로 상호교류 같은 것은 극히 미미한 상태였으며, 그나마도 그러한 교류상을 확증할 만한 근거는 매우 불충분하다.
이러한 상태는 역사시대의 전반기에도 지속되었다. 광의적 시말에 비해 협의적 시말은 실크로드가 역사시대의 후반기에 개통되어 18세기경까지 기능하였다는 좀더 좁은 의미에서의 시말이다. 즉 기원전 8~7세기에 이르러서는 오아시스로나 초원로, 해로를 통한 교류의 흔적이 유물뿐만 아니라 문헌기록에 의해서도 입증되고 있으므로 이 시기를 실크로드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부터 가동한 실크로드는 18세기에 이르게 되면 그중 초원로와 오아시스로는 거의 폐로(廢路)가 되어버렸다. 근대적인 교통수단이 발명 · 이용되고 근대적인 민족국가들의 출현으로 인해 자유이동이 제약됨으로써 이 두 통로의 이용이 사실상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2,500여년간 맥을 이어온 실크로드의 변화과정을 추적해보면, 크게 개척기 · 번영기 · 쇠퇴기의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개척기는 기원전 8~7세기에 스키타이가 초원로를 개척한 때부터 시작해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있었던 장건(張騫)의 서역착공(西域鑿空)과 로마인들의 동방초행(東方初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번영기는 기원후 중국 비단이 다량 서양으로 전파된 때부터 중국 당(唐)대와 아랍-이슬람제국의 활발한 동서교류와 몽골제국의 서정(西征)을 거쳐 17세기 신 · 구대륙간의 교역이 진행되기까지의 시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번영기의 실크로드 전개상을 통관하면 시대상황에 따라 3개 간선 모두 활발하게 가동되는 전면 번영기와 그중 어느 한 길만이 번영하는 부분 번영기가 엇갈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쇠퇴기는 18세기에 이르러 초원로와 오아시스로의 이용이 점차 퇴조 · 마비된 시기다.
실크로드의 개념 확대
실크로드 자체는 인류의 문명사와 ��불어 장기간 기능해온 객관적 실재였지만, 인간의 지적 한계성 때문에 당초부터 그 실재가 온전히 인식되어온 것은 아니다. 그 실재에 대한 인지(認知)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130여년 전부터의 일이다. 그간 학계의 탐구에 의해 실크로드의 공간적인 포괄 범위와 그 기능에 대한 인식이 점진적으로 그 폭을 확대해왔다.
실크로드를 통해 전개된 교류의 실상이 점차적으로 밝혀짐에 따라 실크로드의 개념에 그만큼의 확대가 초래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으로 이러한 개념 확대는 교류에 대한 시야를 또한 그만큼 넓혀주었다. 실크로드의 개념 확대는 실크로드란 통로의 단선적인 연장뿐만 아니라, 복선적(複線的)내지는 망상적(網狀的)인 확대까지를 말한다.
실크로드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몇단계를 거쳐 확대되어왔다. 첫째는 중국~인도로의 단계다. 이 단계는 1877년에 리히트호펜이 최초로 중국에서부터 중앙아시아를 경유해 트란스옥시아나와 서북 인도로 이어지는 길을 실크로드라고 명명함으로써 실크로드란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한 단계다.
둘째 단계는 중국~시리아로의 단계다. 1910년 헤르만이 첫 단계 기간에 탐험가들과 고고학자들이 중앙아시아와 서북 인도뿐 아니라 지중해 동안 시리아의 팔미라(Palmyra)에서 중국 비단(한금(漢錦)) 유물을 다량 발견한 사실을 감안해 이 비단 교역의 길을 시리아까지 연장하여 ‘실크로드’라고 재천명하였다. 이 두 단계에서 실크로드는 주로 사막에 점재한 오아시스를 연결하여 이루어진 길이므로 일명 ‘오아시스로’(Oasis Road)라고도 한다. 실크로드의 개념 확대 차원에서 보면 둘째 단계는 첫단계에 비해 오아시스로의 단선적인 연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크로드 개념 확대의 셋째 단계는 3대 간선로(幹線路) 단계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학계에서는 전(前) 단계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여 오아시스로의 동 · 서단(東 · 西端)을 각각 중국 이동(以東)의 한국 및 일본, 그리고 로마까지 연장했을 뿐만 아니라 실크로드의 포괄범위를 크게 확대하였다.
즉, 그 범위를 유라시아 대륙의 북방 초원지대를 지나는 초원로(草原路)와 지중해에서 중국 남해에 이르는 남해로까지 포함하여 동서를 관통하는 이른바 ‘3대간선(三大幹線)’으로 개념을 확대하였다. 아직 연구가 미흡하지만, 여기에 유라시아의 남북을 관통하는 마역로(馬易路) · 라마로 · 불타로 · 메소포타미아로 · 호박로(琥珀路)의 5개 지선(支線)까지 합치면, 실크로드는 문자 그대로 망상적(網狀的)인 교통로가 된다.
실크로드의 개념 확대 차원에서 보면 앞 두 단계의 단선적인 연장 개념에서 벗어나 복선적(複線的)이며 망상적인 개념으로 크게 확대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실크로드의 개념이 크게 확대되어왔지만 아직은 아시아와 유럽 및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이른바 구대륙(舊大陸)에 한정된 실크로드가 지금까지의 통념이다.
마지막 넷째 단계는 환지구로(環地球路) 단계다. 앞의 세단계를 거쳐 실크로드의 개념은 부단히 확대되어왔지만, 그것은 아직 구대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환언하면 문명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가 지구의 한 부분인 이른바 신대륙(新大陸)—적절치 못한 표현이나 관용에 따라 그대로 사용—에까지는 연결되지 못함으로써 신대륙은 인류문명의 교류권에서 소외되어왔다. 그렇지만 15세기부터는 해로에 의한 문명교류의 통로가 구대륙에서 신대륙에까지 이어져 실크로드는 명실상부한 환지구적 통로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이렇게 문명교류의 통로가 신대륙에까지 이어졌다고 보는 근거는 우선 신대륙으로의 해로 개척이다. 1492년 콜럼버스(C. Columbus, 1451~1506)가 카리브해에 도착한 데 이어, 마젤란(F. Magellan, 1480~1521) 일행이 1519~1522년 에스파냐 → 남미의 남단 → 필리핀 → 인도양 → 아프리카의 남단 → 에스파냐로 이어지는 세계일주 항해를 단행함으로써 해로를 통해 신대륙에 이르는 바닷길이 트이게 되었다.
다음 근거는 신 · 구대륙간의 교역이다. 16세기부터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들이 필리핀의 마닐라를 중간 기착지로 하여 중국의 비단을 중남미에 수출하고 중남미의 백은(白銀)을 아시아와 유럽에 반입하는 등 신 · 구대륙간에는 교역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교역을 통해 고구마 · 감자 · 옥수수 · 낙화생 · 담배 · 해바라기 등 신대륙 특유의 농작물이 아시아와 유럽의 각지에 유입 · 전파되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감안할 때 비록 해로의 단선적인 연장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문명교류의 통로는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따라서 실크로드의 개념은 종래의 구대륙 한계를 벗어나 전지구를 망라하는 환지구적인 통로로 확대되었다. 이상은 기존 실재로서의 실크로드에 대한 인간의 인식변화 과정이다.
실크로드의 역할
실크로드는 3대 간선과 5대 지선을 비롯한 교통망의 총체로서, 이 교통망을 통해 인류문명은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 교류되어왔다. 문명교류를 포함한 인류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실크로드가 담당 수행한 역할은 실로 막중하였다. 그 역할은 첫째로 명실상부한 문명교류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문명이란 교류를 통한 상보상조(相輔相助) 가운데 발달할 수 있으며, 또 그 생명력을 발휘하게 된다.
예로부터 많은 문명들이 동서남북간에 서로 교류가 되어, 그것이 한 문명의 발생요인이 되거나 발달 촉진제가 되기도 하였다는 것은 많은 역사적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동기의 동방 전파는 아시아 민족의 문명 전환을 촉진하였으며, 제지법의 서방 전파는 유럽의 개화를 이끌었다. 그런데 이러한 당위적인 문명교류가 현실화되려면 반드시 가교로서의 일정한 공간적 매체와 물리적 수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매체와 수단이 바로 실크로드다.
둘째로 그 역할은 세계사 전개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실크로드는 환지구적인 대동맥으로서, 이 길을 따라 중요한 세계사적 사변들이 전개되고, 수많은 민족들과 국가들의 흥망성쇠가 거듭되면서 인류역사는 전진해왔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창조자들에서 그리스 · 로마제국, 페르시아제국에서 이슬람제국, 선진(先秦)시대의 중국부터 몽골제국, 석가시대의 인도에서 티무르제국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북방 유��민족들의 흥망에서부터 중앙아시아제국들의 출몰(出沒)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모든 역사적 사변은 모두 실크로드를 따라 전개되고, 또 이 길에 의해 서로 연계되고 관련됨으로써 비로소 모든 변화와 발달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다리우스 · 알렉산드로스 · 한무제 · 당태종 · 이슬람 칼리파들 · 칭기즈칸 · 티무르 등 수많은 세계적 영웅호걸들이 이 길을 통해 다니며 역사의 지휘봉을 휘둘렀던 것이다. 이 길이 없었던들 세계사의 전개는 인류가 일찍이 경험한 그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셋째로 그 역할은 세계 주요 문명의 산파역을 감당한 것이다. 원래 문명의 탄생은 교통의 발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교통의 불편은 문명의 후진을 초래하며, 교통의 발달 없이 문명의 창달이나 전파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명론의 원리가 바로 실크로드에서 그대로 실증되었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을 비롯한 황허 문명 · 인더스 문명 · 그리스로마 문명 · 스키타이 문명 · 불교문명 · 페르시아 문명 · 이슬람 문명 등 동서고금의 중요한 문명은 모두가 이 실크로드를 둘러싼 지역에서 발아한 다음, 이 길을 타고 개화 · 결실하였다. 그 가장 뚜렷한 일례가 바로 불교와 이슬람교가 이 길을 따라 동서남북으로 전파되어 세계적인 종교가 된 사실이다.
실크로드의 3개 간선과 5대 지선
지금까지 실크로드로 통칭해온 초원로와 오아시스로, 해로는 동서로 전개된 동서 문명교류의 주요 통로로서 실크로드의 3대 간선(幹線)이다. 그런데 이 3대 간선은 문명교류 통로의 전체는 아니고 그 간선일 따름이다. 사실 문명교류상을 총체적으로 추적해보면 지리적으로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및 아메리카를 동서로 이어주는 길은 이 3대 간선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샛길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의 남북을 관통하는 교류통로도 여러 개가 병존하여왔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실크로드라는 범칭하에 문명교류의 통로라고 하면 주로 동서로 횡단하는 3대 간선로만을 염두에 두었을 뿐, 남북을 잇는 여러 길은 도외시하였다. 최근에 와서 이 남북교통이 문명교류에 미친 영향이 밝혀짐에 따라 남북로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명교류의 동서통로를 간선이라고 하면, 이 남북통로는 지선(支線)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인류 문명교류의 통로를 동서횡단의 3대 간선에만 국한한 종래의 시각에서 탈피해 남북간의 여러 지선을 포함해 동서남북으로 사통팔달(四通八達)한 하나의 거대한 교통망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남북연결로는 간선인 3대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선이라 불리고 있지만, 문명교류나 교역에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그 노선이 또한 복잡다기하다.
고대에서 중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남북교통로는 대체로 5대 지선이 있었다. 동서 3대 간선은 주로 동위위도(同位緯度) 상에 나타나는 지형적인 특징을 반영하여 초원로(스텝로), 오아시스로, 해로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남북 지선에 한해서는 지형적인 공통성을 찾아볼 수 없으므로 주로 교류나 교역의 내역상 특징을 살려 각 지선의 이름을 짓기로 한다. 실크로드의 남북 5대 지선은 다음과 같다.
① 마역로(馬易路): 남북로의 동단로(東端路)로서 초원로의 동쪽 끝인 막북(漠北)의 오르콘(Orkhon)강 유역에서 카라코룸을 지나 장안(長安, 현 시안(西安))이나 유주(幽州, 현 베이징)와 연결되며, 여기에서 계속 화남(華南) 일대로 뻗어 항저우(杭州)나 광저우(廣州)에 닿아 해로와 접한다.
고대에 이 길은 북방 유목민족과 한(漢)민족 간의 동아시아 쟁탈전을 위한 전쟁로(戰爭路)였으며, 이 길을 따라 양대 민족간에 군사적 및 사회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한 말(마(馬))이 교역되고, 북방 기마유목문화와 남방 농경문화가 교류되었다. 또한 이 길을 따라 북방 기마유목민족문화가 동북아시아 일원에 유입되었다.
② 라마로: 이 길의 북단(北端)은 중가리아 분지로서 고창(高昌) 서북의 투루판(토로번(吐魯蕃))과 타림 분지 동편에 있는 찰클릭(Charklik, 뤄창(若羌))를 지나 티베트의 라싸를 거쳐 히말라야 산록을 따라 북인도의 시킴(석금(錫金))에 이른 후 계속 남하해 인도 갠지스강 어구까지 이어진다. 이 길은 기원후 5세기부터 주로 토욕혼(吐谷渾)에 의해 이용되다가, 7~8세기에 와서는 토번(吐蕃, 티베트)이 중국 경내의 라마로 주변을 장악하게 되자 토번의 서역 원정로 역할을 하였다.
당과 토번 간에 화친관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당의 사신이나 구법승(求法僧)들이 첩경인 이 길을 따라 인도에 왕래하였다. 후세에 와서 중가리아 일원에서 통일국가로 출현한 타타르가 가끔 이 길을 따라 티베트와 중국 서북방에 대한 공략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특기할 것은 티베트에서 발생한 라마교가 바로 이 길을 따라 북상해 몽골에 널리 전파된 사실이다.
③ 불타로(佛陀路): 이 길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Kazakhstan)에서 출발해 타슈켄트(Tashkent)와 사마르칸트(Samarkand)를 거쳐 동서남북의 십자로상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발흐(Balkh, 현 Mazāresheif)와 페샤와르(Peshawar, 간다라(Gandhara))를 지난 후 인더스강 유역을 따라 중인도 서해안의 바루가자(Barugaza, 현 수라트(Surat))까지 줄곧 남하하는 길이다.
예로부터 이 길은 동서남북 교통로의 중심 교차점에 자리하여 동서문명의 교류와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기원전 2000년경 아리아인들을 비롯해 후세의 알렉산드로스나 티무르(Timūr) 등 외래인들의 인도 침입은 모두 이 길을 통해 자행되었다. 특히 불교는 이 길을 따라 북상한 다음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북아시아에 전파되었으며, 법현(法顯)과 현장(玄奘) 같은 구법승들이 이 길로 천축(天竺, 인도)에 가서 수도 · 성불하였다.
④ 메소포타미아로: 흑해와 카스피해 중간지대에 있는 코카서스(Caucasus, 일명 캅카스(Kavkaz))의 북부를 기점으로 하여 트빌리시(Tbilisi)와 타브리즈(Tabriz)를 경유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따라 바그다드와 그 이남에 펼쳐진 메소포타미아를 관통한 후 페르시아만의 바스라(al–Basrah)까지 이르는 길이다. 일찍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개화한 지대를 지나는 이 길은 수메르 문화 · 바빌론 문화 · 페르시아 문화 · 이슬람 문화 등 고대문화를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⑤ 호박로(琥珀路): 이 길은 북유럽의 발트해에서 시작해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키예프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접지(接地)인 터키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과 에페수스(Ephesus)를 지나 지중해 연안을 따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까지 남하하는 길이다. 이 길에는 유럽의 라인강에서부터 헝가리아의 부다페스트를 지나 콘스탄티노플로 이어지는 지선과 발트해에서 부다페스트와 로마를 지나 알렉산드리아까지 연결되는 지선이 포함된다. 이 길은 일찍이 페니키아 시대부터 유럽산 호박(琥珀, amber)의 교역로였다.
이상과 같이 동서남북으로 거미줄처럼 뻗어간 교통망을 통해 동서문명은 종횡무진으로 교류되어왔다. 이 여러 갈래의 간선과 지선으로 이루어진 교통망을 통틀어 실크로드라는 하나의 상징적인 아칭(雅稱)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실크로드의 3대 간선과 5대 지선
출처
세계 최대 규모의 실크로드 사전 그동안 ‘실크로드 사전’은 중국과 일본에서만 출간되었는데, 그 내용은 부분적이거나 지엽적인 데 그치는 아쉬움이 있었다. 중국에서 출간된 사…
편저
파란만장한 삶을 산 학자, 정수일 교수. 그는 일제 강점기 연변의 가난한 유민의 아들로 태어나, 북경대학을 거쳐 중국 외교부에서 근무하며 중국의 엘리트로 거듭났다. 그러다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북한으로 건너 가 평양대학교의 교수…
제공처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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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 지식백과] 실크로드 [Silk Road] (실크로드 사전, 2013. 10. 31.,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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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skybygonie · 9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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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친구같은 손님이준 선물 #러시아#울란우데#바이칼호#가고싶당...#영하 40도라는데...😱😷#ulanude#russia #도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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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apesblog ·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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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 들어갔다 결국 차만 망가질뻔. 캠핑카 세계여행. 러시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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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omansense-blo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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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아름다운 시베리아의 푸른 눈 속으로! 한여름에 만나는 색다른 매력, 여름 바이칼을 즐길 수 있는 7일간의 여행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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