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cosmicsnak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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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좀 섞어서 얘기한거지만 이상주의자임과 동시에 극도의 비관주의자로 살기란 너무 힘들다. 때때로 그저 살아있으니까 숨쉬고 움직이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이렇게나 많이 벌어지는데, 대체 무슨 생각과 정신으로 나의 삶을 영위한다는 걸까? 이 작고 짧은 나의 삶에 의미가 없다손 치더라도 다른 작고 짧은 삶은 왜 그렇게 슬프고 고통받도록 되었을까? 그것이 개인의 선택이라 한들 이미 꼬이고 꼬일대로 엮인 인간의 삶에 과연 그들이 제발로 불행에 뛰어들었다 할 수 있을까? 신이 있다 치더라도 신 조차 할 말이 없을 정도인 이곳은 이미 지옥과 같은 곳이기에 유일신의 구원이란 개념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생각한다. 나 혼자 사랑으로 가득차 행복하게 나아가는 삶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지? 이 동네만 해도 빨간 십자가가 몇 십개인데 밤만 되면 인간들은 그림자랑 빛을 넘나들면서 상상조차 못할 일을 저지르고 다닌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더럽고 추잡하고 그럼에도 서로 사랑하고 아등바등 살아가는지에 대해 노래하고 온 몸으로 표현해봤자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남을 죽일 사람은 오늘도 칼을 갈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늘도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끝도 없이 늘어나는 무한의 공허 한 가운데, 불타며 썩은 냄새를 풍기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내 슬픈 운명의 시작이라면, 내가 지금껏 지켜본, 또 앞으로 내가 지켜볼 세상도 딱 그 정도의 악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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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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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네 생각에 머리가 터져서 밖으로 흘러내릴 것 같아 겨우겨우 편지라는 해결 방법을 깨닫고 급하게 써내려갔다. 대부분 쓰고 난 후 나의 글들은 부끄럽다고 생각되지만 진실되기 위해 쓰면 쓸 수록 그런 점이 덜하다. 다시 한번 읽어가면서 문장을 수정한 결과...그래도 진실되게 쓴 것 같아 다행이다. 이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걸까? 그걸 이제서야 깨달은 걸까? 좋아한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정말 생각하느라 잠을 못자는 건가? 하지만 이걸 대체 어떻게 전달해야한다는 말인가? 편지를 보내는 것 까지야 완벽한 계획이었지만 받을 자신이 없다...무섭다. 이쯤되니 머리로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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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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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을 알고 돌파하는 사람이라면 무릇 아름다운 법이다. 그러니 돌파라는 것은 모르고 코 앞의 문을 여는 방법만 알면서 살아온 내가 아름다울리 있겠니.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언지 사랑하는 것이 무언지 해야 할 것이 무언지 세상을 배회할 것이다. 어쩌면 저 사람은 저렇게 아름답지 하고 또 잠깐 여러 사람 눈길을 줬다가...문득 있는지도 몰랐던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 또 고뇌에 빠질 것이다. 뭘 사랑하는지 뭘 쫓아갈지 하나도 알 수가 없지만 여기에 너무나도 선명히 내가 있어서 저 말도 없는 거울도 나를 비추는구나...
나는 이렇게 사랑하는데 동시에 사랑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언제는 사랑에 가까이 붙었던 적이 있었던가. 사랑을 되받을 대상을 사랑하지 않아서인가. 어디의 누군가도 이런 생각을 한번 쯤 하고 책에 글로 써두지 않았을까.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사람 사는 것 역시 똑같군 하며 나의 특별함마저 승화되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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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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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사진 혹은 패션 그 자체
사탕처럼 달고 맛있어 보이는 것. 오색찬란해 그저 핥고 빨아서 맛보고 씹어서 목으로 넘기고 싶다. 어차피 딱 그 정도의 아-름다움. 그 이후로 내가 너를 기억할 수 있을까? 네가 남긴 더러운 찌꺼기들만이 세상에 남아 나를 고통스럽게 하겠지. 하지만 아ㅡ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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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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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even know yourself need a person who can ____(ex) rea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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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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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를 잘 맞춰 주세요 눈을 감고 음을 아니면 톤을 엮다 보면 당신이 있는 우주 저편까지 이어 당장 곁에 없는 모든 사람과도 손 잡을 수 있대요
상상이 죽을 때 까지 살아있는 나를 좀먹는 저주라면 한껏 받아들이고 당신이 있는 그곳까지 욕망할래요
그러니까 주파수를 잘 맞춰주세요 내가 듣고 같이 노래할 수 있 게 요 통 화 선 같 은 것 은 바라지 말고 우 리 직 접 노 래 해 요 같이요. . . 계 속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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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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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600년 이후에나 볼 수 있는 베텔게우스의 죽음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은 훨씬 가까이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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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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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said... #2
그는 말없이 울고 있는 수에게 키스- 아니 손을 잡아주었다. 사랑하는 것이 전부 죽은 이 세상에, 수가 살아갈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 손의 따뜻함이었다. "대체 왜 이제야 태어나서, 이미 세상을 떠난 것을 사랑하게 된 걸까- 아니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지만- 이런 삶에서 내가 무엇을 쟁취할 수 있을까?" 사실 매번 수는 멋대로 심각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도, 스스로 이런 얘기는 의미 없다고 덧붙이곤 했다.
옛날의 수는 자신의 슬픔을 견디지 못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견디는 것보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 수에겐 훨씬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수는 사랑의 방향(혹은 실존이라고 해야 할까)을 잃고 화가 난 것 같았다. 주는 수가 자신을 죽이는 것보다, 화를 내며 세상을 미워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또 얼마 안가, 수는 자신을 죽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사랑할 대상이 지금 당장 여기에 없어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핑계야. 나는 생각만 너무 많아. 사랑할 겨를이 없어. 어쩌면 사랑하지 못하게 태어난 걸까?”
수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렇게, 수는 또 자신을 파괴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해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데, 그렇담 자신을 파괴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수는 사랑하지 못하게 태어난 것이 맞나?
“어딘가에서 나는 존재하지도 않겠지...너도 마찬가지야. 1년 전에, 폭발하는지 아닌지 말이 많았던 베텔게우스를 알아?”
수는 별에 관심이 많았다. 가끔 옥상에 혼자 올라가 드러누워 맨눈으로 별을 보곤 했다. 망원경이나 천문대를 방문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극히 구식적인, 인간적인 사랑법이었다. 그래서인지, 주가 춥지 않냐고 물으러 올라갈 때마다 바로 말을 걸 수 없었다. 온갖 천체가 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수가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천체까지도.
“그 베텔게우스가 진짜 폭발했다면, 그 죽음을 보기 위해 나는 600년을 넘도록 기다려야겠지.”
별의 폭발조차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수는 세상이 멈춘 듯 아무런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인간인 나에게만, 긴 시간이야. 베텔게우스가 폭발하면서 지구를 봤다면 그 지구에 나를 비롯한 여러 가지가 없었을 테지. 우리는 때로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사랑하는 거야. 차라리 아무것도 없었다면. 사진 한 장도. 그림 하나도. 차라리 나에게 상상력조차 없었다면.”
“베텔게우스가 지구를 사랑했다는 거야?” 주는 약간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인간은 만져봐야 하는 걸까. 왜 그렇게 서로 잡고 만지고 싶어 하는 걸까. 왜냐면 그것만이 강력한 상상력을 깨고 모든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니까. 내 사랑도 마찬가지야. 영영 증명할 수 없지만 내 마음을 양분으로 썩혀 뿌리를 내리고 또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시들겠지.”
수는 주에게 대답도 않고 끊임없이 말했다. 그래서 그냥 키스하면 안 될까? 수많은 생각이 주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수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럴 자신도 없었다. 충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뒤의 모든 것을, 견딜 배짱도 없었다.
삼켜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꽉 들어찬 목구멍이 아파올 때 쯤 뱉을 수 있는 건 슬픔에 절어버린 외마디 비명뿐이다. 주는 소리없이 울고 있는 수의 손을 겹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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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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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들었던 노래들은 평생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언제쯤 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멜랑꼴리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을까. 진단하는게 과연 의미가 있는가 싶으면서도, 아무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근거를 아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한다.
일단 지금 당장 이 멜랑꼴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지금 나는 옛날에 카세트 플레이어로 듣던 노래들을 다시 듣고 있다. 어렸을 적 들었던 노래들은 평생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어린 내가 테이프가 구겨질 만큼 돌려 들은 것은 누군가의 믹스테잎mix tape이었다. 믹스테잎은 래퍼들이 새로 곡을 냈을 때나 몇 번 들어봤던 단어였는데, 옛날에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테이프에 녹음한 것이 믹스테잎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아무튼, 원래 엄마 것이었던 두 개의 믹스테잎은 어떤 남자가 준 것이었다. 그 사람이 엄마한테 무슨 마음으로 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 믹스테잎을 나에게 주었다. 그렇게 총 4개의 카세트테이프. 믹스테잎 두 개와 영화 <사랑과 영혼>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테이프 하나, 파바로티와 친구들 테이프 하나였다. 참고로 <사랑과 영혼> OST 테이프는 엄마가 직접 샀다고 했다.
나는 어렸을 적 엠피쓰리가 없었다. 온라인 음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컴퓨터로 노래를 열심히 찾아보지도(나중에 고등학생이나 되어 유튜브에서 Circus Dawn같은 흔적만 남은 밴드노래를 발견한다거나...)않았다. 가지고 있는 것은 4개의 테이프. 나는 그 테이프를 계속해서 들었다. 그 유명한 언체인드 멜로디, 피아노맨, 어니스티, 더스트 인 더 윈드, 존 레논, 신디 로퍼, 스팅, 에릭 클랩튼과 퀸의 브라이언 메이, 마이클 잭슨, 레너드 코헨...그 많은 사람들이, 그 많은 노래를 그 테이프로 배웠다.
4개의 테이프는 내 아날로그 인생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었다.
참고로 정지 버튼을 누르고, 테이프를 빼고, 다시 넣어 닫고 재생을 누르기까지의 사운드까지 포함이다. 이 기억은 어린 나의 가장 행복하고 순수한 기억이다. 나는 이 노래들을 들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헤아릴 수 없이 넓은 감정을 경험했다. 이 노래 덕분에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내 뒤에 이런 노래들이 있어준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실 누군가 내게 아날로그 세대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해야 더 맞는 대답이 될 것이다. 끽해봤자 밀레니얼 세대의 끝자락? 오히려 Z세대에 속할 내가 카세트테이프를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유행했던 영어 공부 때문이었다. 자기주도학습이라는 이름으로 테이프에 영어 지문을 읽으면서 내 목소리를 녹음해야 했다. 물론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어쩌면 이 영어 공부도 이 노래들하고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카세트 플레이어의 존재는 테이프를 트는게 주된 목적이었다. 나중에 영어 공부를 그만두고 난 후엔, 기존에 쓰던 플레이어가 고장나서였는지, 아니면 내가 그냥 새 걸 갖고 싶었었는지, 노란색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기도 했다. CD도 재생할 수 있는 기계였다. 그걸 복합 플레이어라고 하나...? 아무튼, 그 때부턴 어디서 아빠가 받아온 재즈 CD도 들을 수 있었다. 유일하게 내 방에서 재생할 수 없었던 음악은, 친구가 준 베토벤 LP였다.
글이 길어져서 한글 파일로 따로 작성하고 있다. 사실 노래를 듣는게 우울함을 타파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다. 오히려 감성적이게 되어 논문을 읽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추억에 젖는 것 자체, 또 소중한 과거를 떠올리는 것 자체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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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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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분명히 인간을 사랑한다...최근에는 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너무 사랑해서인지 생각이 많아져서 현실에 서 있는게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참고로 오늘 다가올 11월 24일에 보헤미안 랩소디 3차 티켓을 예매했다. 그 날은 프레디 머큐리의 기일이기도 하다. 밑으로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두 번 째 보고 나서 쓴 글을 붙여넣기 한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가지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내가 듣게 된 음악 테이프가 4개 정도 있었다. 애초에 취향이 그랬던건지, 아님 그 흔한 엠피쓰리가 없어서 였는지 나는 거리낌 없이, 아니 오히려 달달 외울만큼 테이프에 녹음된 노래를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머리가 좀 크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카세트 테이프에서 유튜브로 세상이 바뀌자, 이 노래들을 받아 적어 음원을 찾아봐야겠다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잡다한 묶음인데, 스팅이 Zucchero와 함께 부른 Muoio per te 같이 영어가 아닌 몇 곡 빼고는(다행히 Mad About You를 찾게 되어 Muoio per te도 쉽게 찾았지만), 아주 쉽게 들렸다. 초등학교때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어서 곡 순서나 마지막 곡의 반주가 끊어지는 순간까지 외웠으니, 안 들리면 오히려 그게 이상했을 것이다. 그 많은 노래들 중 Queen의 노래가 두 곡 있었는데, Love of My Life와 Too Much Love Will Kill You였다. 물론 그 시절 나에겐 그건 '퀸'의 노래가 아닌 그냥, 절절하고 미친듯이 슬픈 가사와, 심장을 때리는 기타와 비트, 한계를 모르는 듯한 보컬의 노래일 뿐이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고 나니 퀸이었던 거다.
음원을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나는 밴드의 이름과 얼굴을 마주했다. 여왕Queen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딱 붙어있는 아저씨 넷. 게다가 푸들처럼 잔뜩 부풀린 파마머리라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내 또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We will Rock You나 Under Pressure, We are the Champion같은 노래로 먼저 접하고, 그 다음에 퀸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음악적으로 바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뭐, 거창하게 '와. 완전 뒤집어 놓으셨다! 나타나네!' 라고 하는게 아니라, '워 이 노래좋은데?' 라고. 그러니까 그 당시엔 6분짜리, 음악같지고 않은 음악을, 90년대 말에 태어나 디지털 월드를 살아가는 이 내가, 곧바로 음악이라고 받아들였다는거다. 그게 바로 퀸의 힘인가 싶다.
사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보헤미안 랩소디를 처음 들었던 그 순간. 다만 어느 샌가부터 노래방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서 올까?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튀어오르는 걸까? 이런 노래를 하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걸까?
아무도 모르겠지. 우리는 그저 남은 노래를 테이프가 닳도록 듣고, 또 서라운드로 듣고, 가상 현실로 끌어와 듣고, 이제 사방에 화면이 나오는 영화로 만들어 또 듣는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면서 우리는 이렇게 그들을 사랑한다.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그리워하고 눈물 흘린다.
이렇게 사랑하고 나니, 그들이 퀸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뭐 퀸 노래 좋은거 다 아는데 이럴거면 더 제대로 찍지’ 라고 생각했던...보헤미안 랩소디가)어쩌다 나에게 이런 영화가 된지 알 수 없지만. 또 프레디가 정말 저런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했는가 알 수 없지만, 끝도 없이 자신을 증명해야한다는 압박감?
나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혼자 있을 때 영어로 인터뷰 하듯 혼잣말을 길게 한다. 나의 혼잣말은 '현재'에 존재하기 위한 즉각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말은 나오자마자 증발해버린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은 '글' 로 써두곤 한다. 글은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나의 내면으로 부터 나온 것을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각적으로 확인 할 수 있다. (물론 그림도 있지만 구상과 완성까지 너무 오래 걸리기에...)
하지만 다시금 읽으면서 어쩌면 나는 텅 빈 것이 아닐까 두려워서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어떻게 보면 유치하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사랑할 줄 모르면서 자신에 대한 의심에만 가득 차 침대에 누워 울어버리는 스물셋(스물 넷? 빠른 년생이라 심지어 나이조차 불확실하다. 어이없이 웃기네)
나의 불완전함, 불확정성은 스릴 넘치고 즐겁지만 그야말로 불완전함이다. 불안하고 끝도 없이 궁금한 암흑이다. 그 암흑 안에는 너무 많은 것이 담겨서 휘몰아치는데 그걸 전부 잊기 위해서 아마 어떤 사람들은 엑스터시나 그런 것들을 흡입하나보다. 차라리 믹서기처럼 갈려서 뭔지 아무것도 모르도록. 그러나 이런 과격한 표현을 써도 나는 벌벌떠는 겁쟁이다. 
우울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글이 마구 써지는 걸 보면 분명 우울이 다시 기어오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럴 땐 어떻게 하지? 진짜 친구들과 함께 있어야 하나?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될때까지 나도 방황해야 하나? 하지만 말했지, 나는 겁쟁이라서 길조차 잃어버리기 무서워하는데 방황이라니.
이런 수많은 감정과 동시에, 내가 본 영화는 실제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기에 아무 말이나 사적인 이야기를 함부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앞서 이야기 한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영화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감상으로 치부해야 한다.) 무작정 주인공에게 이입하기엔, 실존 인물의 사적인 부분이 많이 나타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화 ‘캐릭터’의 존재를 무시할 수도 없다. 분명히 각본과 영상 속에 존재하는 프레디는 아무튼, 그냥 슬프다. 일부분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누가 들으면 뭐? 프레디를 보면 너를 보는 것 같다고? 허세 뿐인 말이겠지만, 다들 다 자신을 투영하는 유명인 하나 쯤은 있을테니 누군가 이 긴 글을 끝까지 읽는다면 내 맘을 이해해줬음 한다. 물론 그는 더 빛나고 찬란하기에 내 존재가 더 하찮아지지만 그가 의도한 것은 이런게 아니겠지.
다같이 발을 구르고 노래하고...
당장 여기에 소리와 몸짓으로 존재하는...
사랑을 갖고자하는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자신의 마음을 찢어서라도 나누어주고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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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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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런 끊임없는 사고를 미덕...이라고 여겨본 적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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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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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시오랑, 슬픔에 대하여
슬픔에 집중력이 있는 것은 항상 구체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울할 때는 어떤 외적 원인도 의식되지 않는다. 나는 왜 슬픈지 알고 있지만, 왜 우울한지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우울증은 특별히 심해지지 않고 시간 속에 고르게 펼쳐진다. 물론 슬픔도 우울함도 폭발하는 일은 없다. 둘 다 존재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타격을 주지는 않으니까. 슬픔은 넘쳐흐르는 상태가 아니라, 서서히 가라앉아 사그라지는 상태이다. 대개 슬픈 한숨이라고 말하지 슬픈 고함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슬픔이 특별한 것은 어떤 절정에 뒤이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슬픔과 우울함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장례식이 우울하다고 말할 수 없다. 슬픔에는 우울증에 늘 따르는 미적 측면이 없다. 본질적 경험과 현실에 접근해감에 따라 미적 측면이 줄어드는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죽음은 고통이나 슬픔과 마찬가지로 미적 측면을 부정한다.
어떻게 죽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죽음에 대해 무엇인가 쓰려면 역설을 과장하는 방법밖에 없다. 죽음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 속에 죽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죽음에 대해서 별로 진지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인간은 자기 안에 삶 뿐 아니라 죽음을 품고 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매 순간 내가 깨닫는 것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사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사고란 삶의 샘을 흐리게 하는 악령이거나, 삶의 뿌리를 상하게 하는 질병과 같은 것이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 시종일관 본질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신의 운명에 대해 계속 의심을 품는 것, 사는 데 피로를 느끼고 자신의 생각과 존재 자체 때문에 몹시 지쳐 있는 것, 자신의 뒤로 마치 비극과 죽음의 상징처럼 피와 연기의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것, 이것은 바로 정신 문제에 멀미를 내고 사고를 저주로 생각할 정도로 당신이 불행하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것도 유감스러워하지 말아야 할 세상에 유감스러운 것이 너무 많다. 이 세상은 진정 내가 유감스러워 할 가치가 있는가?
나의 코멘트 : 시발. 이 정도는 되어야 슬픔에 대해 아는 사람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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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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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삶을 끊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과 그것을 꿈꿀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진 인간이 저주받은게 아니라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마조히스트? 구원자? 나조차 인간이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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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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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ya Takeuchi의 Plastic Love, Junko Ohashi의 Telephone Number를 들으면서
Z는 거리로 들어서면서 춤추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없어진 이어폰 선은 더 이상 춤추는데 걸리적 거리지 않는다. 새카만 거리 중심에, 술 잔 안의 올리브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Z.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80년대의 노래. 점멸하는 '퍼플' '핑크' 눈이 부시는 차가운 '사이얀 블루'. 가장 위에서 터지는 하얀 빛의 조각들. 물론 더 화려하고-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는 많은 빛을 반사했을- 미러볼을 바라기엔, 너무 어두운 거리다. 수명이 다 되어 지직거리는 네온사인들과 멀리서 조용히 빛나는 십자가는 미러볼 대신으로 충분하다. Z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위로 떨어지는 옅은 빛의 열감에 졸음이 함께 춤춘다. 기대되지 않는 내일. 그러나 내일 또 마시게 될, 기대되는 한 잔의 커피.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아침. 그러나 그 해가 지고 다시 춤추게 될, 이 짙은 어둠으로 마구 칠해진 골목. 그 한 가운데에서, 올리브처럼 춤추는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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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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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그가 과거의 내가 무례하게 대한다고 생각될 때마다 내게 말해주었다면, 나는 사과할 기회라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미 다 지나간 나에 대해, 그 어떤 무례함이나 하대함의 의도가 전혀 없었더라도, 이상한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나에게 그 어떤 의도도 없었던 것을 그 혼자 오해하고 쌓아둔 것이다. 그는 내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내가 사과할 순간을 빼앗고 잘못된 나를 그대로 두었다. 여기서 나는 그에 대해 배신감이 들었다. 그는 나를 그 정도도 못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뭐가 되었든 그를 진정으로 좋아했던 나인데, 그에게 준 상처에 대해 사과할 기회조차 받지 못한 것이다...그리고 그 상처들을 현재 쏟아내는 과정에서 나에게 상처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제일 실망스러웠다. 물론 그때의 그는 성나있었고, 쌓여온 것이 폭발한 거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할퀴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순간 과거에 그가 느꼈던 상처에 대한 무지도 나의 잘못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기 전까지, 타인이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듯,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는 왜 나 스스로 내 태도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지 않았냐는 그의 물음에 답해야 했다. 그렇게 그는, 그의 감정에 대한 나의 무지를 명확히 나만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너무 복잡하다. 사람 마음 한치 앞도 알 수 없듯, 과거의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가 끄집어 낸(솔직하게 생각했을 때 이 과거의 언급은, 그가 오로지 나만이 잘못된 것처럼 말하고 싶었기 때문인것 같다.) 이 과거의 이야기는 일단 접어두자. 나는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 내 태도에 대해 오해할 수 있었던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 나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그는 나를 비난했다. 또 내가 나의 입장을 말하기도 전에 이미 그와 그 주변 사람의 생각대로 '나는 그를 함부로 대한다' 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이 두 가지에 대해 나도 상처받았다고 언급했을 때, 그는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마치 '너는 나에게 지금껏 그래왔으니, 너도 그만큼 상처를 받아도 된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난 그런 식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만일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에게 사과할 것이고, 적어도 어제로 돌아간다면 그에게 진심으로 대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은 그에게 비난받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닌, 내가 그를 진심으로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사과할 기회를 빼앗겨 현재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과거의 나를 나쁜 사람으로 현재에 끌어왔다. 또 그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알린 적도 없으면서, 그것을 몰라준 나를 비난했다.
나는 나대로 살아왔는데, 과거의 나는 사과는 커녕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나쁜 사람이 되어 있었고, 현재의 나는 지금껏 한번의 자아 성찰조차 하지 않은 나태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결론내린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계속 잡고 있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인간관계는 참...이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 모른다는 것을 끊임없이 되뇌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느꼈든 남에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나는 타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앞서서 판단하고 미리 미워하지 말자. 반대로 나 또한 남에게 함부로 미움받을 수 없다. 남의 시선으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다. 그가 그의 감정을 표현하여 자신을 지키려 한 것처럼...나��� 나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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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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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꿈일기를 쓴다는 것은, 꿈이 너무 쉽게 휘발되어 버리기 때문에 정확하게 묘사한다기보다 그 분위기를 잡아서 쓰는 것에 가깝다. 바다 #2와 #3은 최근에 꾸고 기억나는 두 꿈이 우연히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옛날에 할아버지가 나왔던 꿈도 생각나서 그것을 1번으로 하였다. 아쉽게도 #3은 처음 썼던 것이 날아가서 분위기를 쓴다기보다 정말로 기록처럼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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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icsnake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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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3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바로 코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원래는 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조금 걸어 나가 고개를 내밀어야 겨우 그곳에 찰랑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발 앞에 거센 파도를 일으키며 철썩이고 있었다. 원래 내 집이 있어야 할 동네는 온데간데없고 정말 바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심지어 땅도 물에 심하게 젖어 축축한 찰흙덩어리 같았다. 회색 빛이 진하게 도는 갈색 땅은 찐득거리며 발에 달라붙었다. 바다가 왜 이렇게 가까이 왔지? 집은 어디로 갔지? 혼자 당황해하며 바다 쪽으로 다가가보니 땅은 가파르게 경사져 마치 절벽처럼 끊겨 있고 그 밑에선 여전히 시커먼 파도가 치고 있었다. 어차피 집이 없어진 것은 분명하니, 당황스럽지만 해안선을 따라(물론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해안선이지만)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형광색 조끼에 모자를 눌러 쓴 경찰들도 많이 보였다. 또 사람들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서로 몇 명씩 무리를 지어 바다로 나가려는 것 같았다. 경찰은 내게, 가족들은 거제로 피신했다고 했다. 나는 시끄러운 바다를 가만히 쳐다보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한테 가족들에게 가겠냐고 물어봤었던가. 내가 대답을 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그냥 지나쳐서 계속 해안가를 걸었을 것이다. 좀 더 가니 해안 쪽이 원형으로 크게 파여 있었다. 뭐가 추락한 자국인지 어떤 게 쓸려와 부딪힌 자국인지 아무튼 크게 패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 주위에서 바다를 향해 걷거나 바다를 쳐다보았다. 구덩이 근처에는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땅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땅 쪽으로 걸어 나갔다. 멀리 있어서 자세히 보였다고는 말은 못하겠지만, 다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뭔가 모두 바다로 떠날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특히 멀리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배경으로 하늘이 깔려있었다. 그들 뒤에만 특이하게, 마치 헬릭스 성운처럼, 휘감기는 색색의 구름이 깔려있었다. 짙은 남색에 작게 빛나는 흰색 별이(고개를 돌리면 작은 보석이 살짝 반짝이는 것처럼) 콕콕 찍혀있었다. 하늘에 구멍이 나서 그 부분에만 우주가 비쳐보였던 걸까. 아무튼 파도 소리가 들렸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으며 사람들은 모두 바다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들을 보았다. 내 근처에 있는 사람들도 소리 없이 바다로 뻗어있는 부분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땅 –이라기보다 역시 찰흙-과 비슷한 텁텁한 색의 하늘. 파랗고 어두운 바다와 파도. 채도 낮은 핑크 베이지 머메이드지 위에 두껍게 칠해놓은 물감 자국처럼. 사람들은 조용히 바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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